개성상인의 비결

유용한정보 2008/10/14 17:52 벅스코리아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천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상(松商)이라고도 불린 개성상인들은 번창했다. 전국 상권을 장악하고 조선 경제를 좌지우지 하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아래 참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어떻게 이태리의 베니스 상인, 중국의 화교 상인, 유태 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상인이 될 수 있었을까. 개성상인을 파헤친 수많은 논문과 서적이 많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바로 문화다.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개성상인들은 고려의 수도 개성에 인접하여 물자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고려 국교가 불교인 탓에 개성의 해상 상인 출신인 왕건이 임금이 될 정도니 상업에 차별이 없었다. 예성강과 벽란도를 국제무역항으로 삼아 대외 무역이 번성하면서 국부를 창출하였으니 개성은 일국의 수도이면서 명실 공히 상업도시였다. 이때 서양에 'KOREA(고려)'가 알려졌다. 하지만 명석한 상인들이 대거 벼슬에 나감으로서 상업은 서자나 낮은 신분으로 점차 밀려 퇴색하기 시작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다. 정몽준을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이성계에 새 왕조에 반대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그 유지는 조신시대 내내 대대손손 이어졌다.


그러나 철저한 신분계급을 토대로 한 조선시대에 양반이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생계수단은 벼슬이었다. 입각하지 않는 다는 가훈을 어길 수도 없었던 터. 그리하여 재야 지식인들은 상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고려를 유지했던 세력들이 다시 개성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그 당시 개성상인들은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상술이 판치고 주먹과 권력을 업은 상인이 법이었다. 복귀한 개성상인들은 왕실출신의 지식인들이기에 한 국가를 경영하던 문화의 기풍이 그대로 이어 장사에 ‘품위’와 ‘신용’이란 철학을 심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지만 경제적으로 재기를 꿈꿨다. 눈속임 상술이 아니라 장사를 문화로 누리는 상도를 세운 것이다. 상거래 도덕과 철학을 명시하여 이를 지킬 수 있는 품격의 인물만을 계원으로 선발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멤버십 클럽을 만든 것이다. 더욱이 명석한 두뇌를 활용하여 공정한 상업 규칙을 만들었으니 이미 서양보다 2세기나 앞선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이라는 독특한 복식부기를 고안하여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의 개성상인들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고려 추앙 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조선은 민간상인에 의한 무역을 금지하고 국가에서 임명한 관납상인들에게 무역상품의 조달권을 주고 주요 상거래 품목마저 독점하게 하였다. 상인이 거래 상품을 제한 받다니, 하루아침에 백화점에서 무자료 노점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개성상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개성상인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풍성한 고품격 정서문화의 토대가 굳건했다. 관납상인과 대적할 상거래 방법을 고안하고 공유하고 조직화했다. 먼저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관납유통체계의 허점을 노려 포목, 양태, 홍삼 등 한 우물만 파는 전문성과 전국적 유통망인 행상(行商)을 조직하여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요즘으로 치면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다.


조선 중기 화폐 유통 등 변화하는 주변 여건에 신속히 전국적으로 대응하므로 써 막강한 관납상인들과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근시안적 이익만 쫒는 상술이었다면 애초부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조선조의 그 어떤 문화보다도 풍성한 철학과 기술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명분에 치우친 조선사회에 합리와 실리라는 실학운동에 불을 지핀 것도 바로 개성상인들의 입김이었다. 이런 상업 문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그 가혹한 일제 강점기 때도 민족자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화 없이 실리만 추구한다면 이는 상술에 불과하다. 우리는 흔히 문화를 경제상품의 한 품목으로 생각한다. 산업 활동 후에 뒤풀이하는 배설적인 여흥이라고 여긴다. 이는 큰 착각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요즘 문화마케팅, 문화산업 등의 개념에도 마케팅만 있고 우리의 수천 년의 문화는 들어있지 않다. 영혼이 죽으면 정신이 죽고, 정신이 죽으면 물질도 죽는 것이다. 문화는 혼이다. 상업문화는 상혼이다.


그 강성하던 몽고와 청나라가 짧은 종말을 맞은 것도 문화의 부재 때문이다. 멀리서 교훈을 빌릴 것도 없이 우리나라 7-80년대 개발시대 주역이던 정권이 비참한 종말을 맞는 것도 문화의 부재 탓이다. 보릿고개는 해결했지만 향유할 정신문화가 없었다. 급기야 문화는 개발독재에 항거하는 처절한 저항문화로 표출되고 만 것이다.


최근 숭례문이 불탔다. ‘오랜 목조건물하나 탄 것에 불과하고, 빨리 다시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는 고층빌딩 속에서 건물 한 채 전소하고 만 것일까. 양심은 천대받고 법률과 율법만 판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메말라서 불탄 것은 아닐까. 혹시 풍성하고 수용성이 넓은 문화의 고양 없이 돈만 벌면 된다는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우리 국민들이 너무 개발 성장 시대의 향수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화 없는 경제는 인간 없는 수치놀음일 뿐이다. 수출총액, 국민소득을 세계에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의 문화수준은 어떤지 돌아봐야한다. 한글날의 공휴문제, 과거 서대문 형무소의 철거 문제, 개발에 밀린 국토자연의 훼손......문화 없는 경제는 아무리 덩치가 커도 뿌리 깊은 문화에 단번에 먹히게 되어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나침판없는 돈벌이는 돈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빛나는 문화가 없다면 강대국의 속국에 불과하다.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뿌리가 없는 경제는 모래성 쌓기와 다를 바 없다. 문화역량이 곧 튼튼한 경제의 척도다.

출처:
http://www.airkoryo.com/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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